공연

진숙이들아 사랑한다

천천히2 2012. 12. 12. 10:07

연극 진숙아 사랑한다를 보는데

데모하다 잡혀 고문받는 여학생이 나온다

성추행과 폭력의 고문에 그녀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문득 저 학생이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 데모를 했을까

젊은 객기로 분위기에 휩쓸리다 저 모진 일을 당하는건 아닐까 궁금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 저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생각할까

두려움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라면, 내 딸이라면 어떨까

저 모진 곳에 내가, 내 딸이 있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1910년대 여성의 참정권의 요구가 계속 묵살당하던 그때

영국의 한 여인이 경마경기가 진행되는 경마장안으로 뛰어들어

여성에게 참정권을 달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는 달리는 말에 치어 죽었다

그녀에게는 참정권이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한 것인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진숙이들의 희생으로, 경마장으로 뛰어든 그 여인들의 희생으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숙이의 이야기는 무대 위의 이야기가 아니고 

경마장에서 죽은 여인의 이야기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나와 따로 구분지을 수 없는 우리가 사는 얘기였다

유신시절 노동자의 이야기나

권력유지를 위한 '와꾸짜기'의 희생이 되는 일

그것은 몇십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목숨을 내던져가며

견디기 힘든 수모와 고통을 겪으며 쟁취하고 지켜낸 것들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누리고 심지어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든 저 시절이 되풀이 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아무런 긴장을 하지 않고 사는구나

내가 어영부영 살면 안되는구나

 

연극 제목이 너무 통속적이어서 조금 아쉬웠는데

연극을 보고 나니 저절로 말이 되어 나온다

진숙아 사랑한다

진숙이들아 사랑한다

 

2012년 12월 10일 예산문예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