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이랑이쁜이랑

벽골재여행

천천히2 2012. 9. 18. 15:05

벽골제버스정유소가 한옥집 대문간처럼 생겼다

그곳에 앉아 언제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린다

기쿠지로의 여름의 한장면이다

알지도 못하는 시골 어느 정유소에서의 막막함이 똑같다

나는 이 시간이 여유로워 좋은데 우리탁이는 아닌가보다

"몇시차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기다린다는게 말이돼? 차시간을 알아봤어야지"

"여행이 그런거여 계획적으로 딱딱 맞춰서 하면 무슨 재미여"

"난 내가 뭘 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게 좋아"

"예측불허라는 말이 있는겨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을 만날 때

그게 좋은 일이면 더 기쁘고 나쁜 일이면 이럴 수도 있는거구나 경험하게 되는거지"

"훌륭한 얘기 하려고 그러지? 됐고 택시타고 가자~"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버스를 한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랬는데 하마터먼 그렇게 기다린 버스를 놓치고 한시간 더 그러구 있을 뻔 했으니

스마트폰으로 동영상보며 낄낄 거리느라 우리 둘 다 버스가 온 줄을 모른거다

에미나 탁이나 쯧쯧

저만치서 경적을 울려 우리를 불러준 기사아저씨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 아저씨는 아침에 시내정유소에서 우리를 보셨다고 했다

그분이 우리 모른 척하고 지나갔더라면 우리는 벽골제에서 국밥을 먹었을 것이고 그러면 전주여행은 없었을 것이다

우연이 만들어 내는 도미노가 참 흥미롭다

 

차시간 알아보지 않고 되는대로 다녔어도 김제서 전주가는 버스를 바로 만났고

전주갔다 익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기차가 십분 후 출발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고 기대하지 않은 행운도 만난다

여행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과 닮았다

이 유쾌한 진리를 우리탁이가 엄니의 지당하신 말씀 훌륭하신 말씀으로 듣는게 아니라

여행길에서 가을비 맞아가며 몸으로 알게 되어 난 참 기쁘다

우리탁이 여행에서 얻은 경험으로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탁이가 차창밖 풍경을 보고 있다

나는 그런 탁이의 옆모습을 지켜본다

컴퓨터화면이 아닌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있는 우리탁이여서 너무나 좋다

 

"솔직히 오늘 여행은 뭔지 모르겠어

지평선도 그렇고 한정식도 그렇고 별루야"

"기지? 엄니도 생각한거하고 너무 달라서 조금 허전해

그래도 엄니는 우리탁이랑 이렇게 여행한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너무너무 행복해

고마워 우리귀한탁이"

우리탁이는 늘 나에게 참으로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