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짧은글 ((09~ )
2012년 9월 1일
아담한 기와집이었다
가정집 구조 그대로 식당으로 쓰던 기와집
맛있는 음식보다 더 좋았던 아늑한 집안분위기
식당이 이전할 때 설마 허물려나 조마조마했다
개조만 해서 잘 썼으면 좋겠다 불안한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기대는 헛되고 어느날 점심산책을 하다 보니 기와집을 부수고 있었다
참 마음이 아팠다
기와집이 허물어지고 두달
이자리에 집이 있었나 싶게 이곳은 말짱하게 풀밭이 되어버렸다
땅은 기와집을 미련없이 잊어버렸나부다
나는 아직 이렇게 잊지못하고 이곳에서 서성거리는데...
2012년 9월 1일
그 옷을 입으면 몸에 끼여 불편했다
바랜 팥죽색이 나를 초라해보이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몇개 안되는 외출복이어서 가끔씩이라도 입게 되니 버리지 못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아니 이렇게까지 궁색하게 살 필요는 없는거지
갑자기 드는 생각
이 생각이 흐지부지 될까봐 가위로 싹뚝 잘라서 버렸다
아이구 속이 시원하다
2012년 9월 4일
향일암에서 타기에게 팔찌를 사주었다
잘 챙기더니 오늘은 팔찌를 안하고 갔다
타기팔찌를 하고 출근했다
타기보듯 팔찌를 본다
참 좋다
이게 애착이지..
애착의 마음이 전해지면 상대의 마음은 무겁고 괴로우므로
그 애착을 다스려야 진정으로 자식을 위할 수 있다 - 마음닦는 법 -
2012년 9월 8일
얼마전까지 논 위로 바람이 지나갈 때면
바람의 무게만큼 벼잎이 출렁출렁거렸다
선들선들 가을바람이 대술들판 위를 지나간다
잘 여문 알갱이로 빽빽한 가을논은 바람이 지나가도 이제 출렁거리지 않는다
잘 깎아놓은 잔디밭처럼 판판하고 단단한 가을논이다
2012년 9월 8일
저쪽 농로길로 말 대여섯마리가 달리더니 다리를 건너 내쪽으로 온다
장관이다
타기에게 보여줄 생각에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찍을 때는 모르겠더니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말이 엄청 크고 힘이 넘친다
두려움과 감탄으로 감전된듯 짜릿했다
사진찍지 말고 처음부터 그냥 볼 걸 그랬다
휴대폰사진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에너지였다
2012년 9월 10일
아주 오랜만에 영나다리 밑으로 자두데리고 운동을 나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강변의 운치가 대단했다
물흐르는 소리 물고기가 튀어오르는 소리 물위로 비치는 가로등불빛의 떨림..
아주 천천히 걸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간
내 곁을 지나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다
그들은 운동을 하고
나는 느린 산책을 한다
내가 다른 사람과는 정말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
2012년 9월 11일
영훈이 여자친구 생일이라고 선물을 준비하는데
커다란 박스에 딸기우유 15개를 깔고(15살이라서)
그 위에 과자를 한가득 채웠단다
사진을 보니 하트가 그려진 빨간색종이로 포장까지 했다
아 구여운 탁이들
2012년 9월 14일
여름에 감기걸려 가을에 낫는 할머니가 계셨다네
그래서 할아버지가 국화를 키우셨대
가을되면 할머니 감기 낫는다고
국화꽃 기다리는 할아버지 마음이라니....
2012년 9월 14일
매일 산책하는 골목이었는데 물소리는 처음 들었다
보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면
이렇게 소리를 놓치는구나
오늘은 귀를 열고 걸어본다
비행기소리 차소리 바람소리 그밖의 작은 소음들이 선명하다
눈을 닫으면 귀가 커지는구나
2012년 9월 16일
의자놀이를 읽고 노조원들의 이야기가 나의 얘기인데
그동안 남의 얘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주 어느 거리에선가 버스회사 노조에서 만든 텐트가 보였다
그곳도 오래된 갈등이었다
낡고 찢어진 플래카드와 어지러운 구호들
난 나를 모르겠다
그걸 보는 순간 그들의 조용한 외침이 시끄러웠고
그들의 분노가 부담스러웠다
외면하고 싶었다
난 내 현실과 직접적으로 닿지 않은 것들에만 정의로운 척 하는가보다
난 나를 정말 모르겠다
2012년 9월 21일
점심산책시간에 기차역주차장을 걸어오는데
땡볕에 그러는 내가 신기했는지 트럭을 빼던 아저씨가
"운동하슈?"한다
"예~"
낯선 사람이어도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묻는데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대답하니
"아이구 참"그러구 가신다
ㅎㅎㅎㅎㅎ
2012년 9월 22일
준영이가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25살남자한테 반해버린 것이다
화분의 누렁잎을 떼어냈다
화분이 다시 푸르른 청춘이 되었다
식물은 이렇게 피고지고피고지고피는데
내 젊은은 지고지고...
재생불능 내 젊음이 이렇게 슬프다
준영이의 허무한 눈빛에 걸려 내가 꼼짝을 못하고 있다
2012년 9월 22일
탁이가 용훈네로 자러간다
복도유리창으로 탁이랑 친구들을 내려다본다
탁이를 불러 손을 흔들어주고 싶은데
친구들 있는데 너무 유별난거 같아 참는다
그런데 우리탁이가 갑자기 15층을 올려다보더니 손을 흔든다
"들어가~"하면서
아 얼마나 기쁘던지
내가 우리탁이 생각하듯이 탁이도 엄니를 생각하는구나
감동 감동했다
2012년 9월 23일
원숙언니랑 자경언니랑 남당리로 대하먹으러 갔다
가을바람이 아주 부드러웠다
갯벌에 작은게가 뽁뽁거리며 구멍을 드나들었다
만조가 되어 물결이 바로 옆에서 찰랑거리는 방파제로 걸어가는 순간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밝아지는 가로등불빛이 참 신비스러웠다
2012년 9월 24일
자두이름을 준영이로 바꿨다
내가 집에 가면 우리준영이가 날보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준영이가 막 나 좋다구 막 뛰어와서 앵기고 뽀뽀하고 막 부비고 막 애교피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리이쁜이가 날보고 미친댄다
'엄니 이렇게 아이돌처럼 생긴애 조아하는거 첨보유~유지태 어디가써 유지태어디가써!!!!"
이쁜아 엄니가 왜 이러냐면 준영이가 그 눈빛으로 먼지가 되어를 불렀기 때문이여
그 허무한 눈빛으로 엄니가 좋아하는 먼지가 되어를 불렀기 때문에 엄니가 주책병에 걸린겨
어제 하루종일 그 동영상만 봤다
아이고 준영아~~~~~~~
2012년 9월 25일
계곡물소리가 나는 개울을 지나
조용히 벼알곡 영글어가는 들판까지
내 점심산책길이 황홀하다
가을바람 가을햇빛 가을풀색 가을풀벌레소리 가을하늘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2012년 9월 25일
개울물에 작은 송사리떼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헤엄을 치고 있다
때로는 그림자가 실체보다 더 또렷해 보인다
2012년 9월 25일
세계적인 스타가 엄청 살찐 모습으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당당함이 미스터리
자신의 살찐 모습이 전혀 창피하거나 불행한거 같지가 않다
언제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그런건지
대부분 원래의 미모를 잃고 힘들어하는 우리하고는 참 많이 다르다
2012년 9월 26일
이쁘니가 왔는데 두달새 왜 그렇게 뚱뚱해진거야
아 막 실망스럽네
자꾸 왜 이케 살쪘냐는 소리가 나온다
근데 말 챙겨야지 잘못하면 이쁜이 마음 상하겠다
탁이는 수학점수가 십점대라지
이쁜이는 살쪄서 뒤뚱거리지
기분이 엄청 다운다운다운됐다
2012년 9월 29일
추석전날 밤하늘이 달무리로 화려하다
마당에서 이쁜이 탁이랑 말춤을 췄다
사랑스런 우리 애기들
2012년 10월 2일
마곡사 뒷산을 걷는다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 앞에서 몇사람이 절을 하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는데 원숙언니 자경언니가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동생집이 물이 샌다는 얘기중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잠시 말을 멈추어도 좋을 것을....
2012년 10월 2일
나에게 준영이는 소년은교다....
2012년 10월 3일
대화는 탁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즉흥연주같다는 생각도 한다
주고 받음의 조화
영미언니와 금오산을 갔다
영미언니와의 대화가 조화롭지 못했다
취향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산행의 여운이 개운치 않다
2012년 10월 6일
일부러 타박타박 걸어 찾아간 엄마아부지
무덤앞에 심어놓은 화초가 흔적없이 사려졌다
공원측이 잔디관리한다고 없앴나부다
조화가 보기싫어 그리한건데 조화도 없고 화초도 없는 초라한 산소
우리엄니 아부지 남보기 부끄러워할거 같다
내 취향이 아니라 엄니아부지 기분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아프다
사실은 아무 의미없이 비씨기만한 조화사는 돈이 아까웠다
엄마 아부지 미안해
이쁜꽃 사다줄게
2012년 10월 8일
점심먹고 장구경을 갔는데
머슴애가 망아지마냥 이리저리 뛰어댕긴다
말로 말리던 아이엄니가 더이상은 못참겠는지 오지게 등짝 한번 때린다 퍽
달마시안개를 데리고 나온 아줌니
사람들이 관심갖고 쳐다보니 기분이 좋았나보다
앉아! 앉아! 말잘듣는 개를 자랑하고 싶은데 개는 요지부동
아줌니 무안한지 개등짝을 오지게 때린다 퍽
퍽퍽 장터를 울리는 퍽퍽 소리
너무 재밌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2년 10월 7일
거울속 내 머리에 흰머리가 삐죽 보인다
어렵게 흰머리 두 개를 찾아 뽑는다
언제였지
앞머리에 섞인 흰머리를 보고 흰머리가 보이더라도 뽑지 말아야지
내가 늙어가는 것을 편안하게 지켜봐야지 생각했었다
하아~ 이럴 줄 몰랐지
이렇게 흰머리가 슬플 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거지
22살 어린 남자때문에 설레는 나는 늙어가는 것이 너무 슬프다
2012년 10월 9일
돈이 물같은 사람이 있고
농사짓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필요한 만큼의 돈이 쏟아지는 사람
씨앗 하나 심어 땡볕과 비바람에 애면글면하며 가꾸어 수확하는 사람
2012년 10월 9일
문예회관에서 코바나공연이 있었는데
흥겨운 라틴음악을 앉아서 들으려니 흥이 안난다
무대위에서 가수들만 너무 애쓰고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흥겨운 척 하느라 애쓰고
아 어려워 어려워
탁이는 야한 라틴댄서 복장보고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좋댄다ㅎㅎ
진행하는 사람은 너무 점잖게 앉아있는 우리더러
"고부간에 같이 오셨어요?"
스탠딩공연이었으면 내가 춤좀 췄지
2012년 10월 10일
요시카즈 마레의 나는 당신을 원해요를 듣는다
내가 준영이와 연애를 한다면
나는 이노래 정서로 그를 사랑할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준영이하고는 정말 가능성이 없는 거구나 깨닫게 된다
스물다섯 청년에게 이런 노래가 마음에 와닿겠나
교감없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겠나
준영이를 두고 사랑을 꿈꾼게 그야말로 일장춘몽이다
2012년 10월 10일
혼자 걸으면 입이 닫아지면서 눈이 커지고 귀가 커진다
세세이 보이고 전혀 생각도 않던 소리가 들린다
둘이 걸으면 외롭지 않아 좋고
혼자 걸으면 마음이 충만해져서 좋다
2012년 10월 12일
내 발자국소리에 풀섶에서 튀어오르는 새 두마리
니들 거기서 뭐했어~~~~~?
조용한 한낮 걷다보니 풀섶에서 들리는 소리
딱딱
마른 풀깍지 저절로 뒤틀리며 씨앗 튀는 소리
2012년 10월 13일
두번째 야영 텐트 속 탁이
2012년 10월 17일
이른 아침 비가 조금 내렸다
비그치고 햇빛 비치고 바람 부니 비가 언제 왔냐는 듯 물기없이 뽀송뽀송한 바닥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기차역 주차장 바닥에 콩알만한 달팽이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돌아갈길 생각안하고 여기까지 나온 달팽이들이다
풀섶까지는 이삼미터
비오기까지 꼼짝 못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차가 드나드는 주차장
벌써 여러마리 밟혀 으깨졌다
비가 다시 내려야 하는데 파란 하늘을 보니 비올거 같지는 않고 ....
내가 그것들 때문에 마음이 애려 죽겠다
2012년 10월 21일
경숙언니는 25년만에 만나는거고
미환언니는 15년만에 만나는거다
어쩜 이러는지 도대체 변한게 없다
하나도 변한게 없다 하나도
미환언니가 나보고 그랬다
잘살건같아서 좋다고
그말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말이 없다
광교산을 오르는데
한시간쯤 걸으니 막걸리파는 곳이 있다
벌써 정상주인가 낼름 한잔을 완샷했는데
아뿔사 취기는 점점 오르는데 그게 하산주파는 곳이란다
두어시간은 취기때문에 헤롱거려야했다
그래도 가을산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참 좋았다
2012년 10월 27일
나는 내가 행복을 감지하는 재주가 뛰어나서 환경하고는 상관없이 행복한거라고 생각했다
신형철의 책속에 슬픈 가족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내가 부끄러워졌다
난 많은 걸 갖고 있어서 당연히 행복한 사람인건데
그걸 무슨 내가 잘나서 행복을 찾아낸 줄 알고 있었다
내 잘난 척이 오지다
2012년 10월 28일
벚꽃길로 산책을 나갔다가 무진장집에 들러 오리주물럭을 샀다
계산으로 이만사천원인데 언니가 만오천원만 받는다
아까 언니가 월급 얼마 받느냐 그걸로 살기 힘들겠다 이런 걱정을 하더니
마음을 써주느라 이것만 받는가보다
언니마음이 고마우면서도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이정도는 나에게 별스런 일이 아닌다
언니가 나를 동정하는구나
씁쓸하다
2012년 10월 31일
나에게 오는 친절이 그냥 고마운게 아니고 정말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원숙언니가 대술을 가주겠다고 왔다
내가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갈 일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불들고 버스탈 나를 걱정해서 그냥 와 준거다
생각하면 나는 내 주변에 이렇게 마음써주는게 별로 없는데
나는 늘 이렇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산다
이렇게 받은 사랑을 나도 내 주변에 주어야 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