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입문
모임자리였다
오래동안 한사람의 얘기가 이어진다
객지나가 잘 지내고 있는 자식이 대견하고 곰살궂게 자주 연락까지 해서
아주 행복하다는 에미의 네버엔딩스토리였다
나도 에미니 그 달달한 행복감을 모를까
맑은 물속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미마음이다
그래도 너무 지나치다
다섯명이 만났는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
짜증이 난다
짜증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불편한 마음으로 출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말의 피로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말이 넘치는 세상 차라리 침묵하는 것도 좋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코이케 류노스케가 쓴 침묵입문얘기였다
작년 겨울에 이니가 쓴 생각버리기를 읽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차창에 기대고 있는 표지사진이 아주 평화로워보였다
생각버리기는 평소 잡다한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운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된 책이다
그가 이번에는 말말말 말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에게 침묵처방을 알려준다
모든 이들은 자기얘기를 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남들 얘기를 듣는 것에는 소홀하다는 말
자기농도가 진할 수록 말이 많아진다는 지은이의 말이 답답한 내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아 그런거였구나
마치 엉킨 실타래에서 가닥을 찾아낸거 같다
유난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만나면 부담스러웠다
그의 과시, 편견, 유치함을 알아차리게 되면 무척 예민해지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침묵입문을 읽다보니 나또한 자기농도가 엄청 진한 사람이었다
강한 것과 진한 것이 부딪쳤으니 당연히 불꽃이 튈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을 때 잠깐 생각을 해본다
나는 왜 이 말을 하고 싶어하나
내 마음속에 자기과시 편견 불만 자랑 불안 등등의 그림자가 보인다
굳이 입밖으로 꺼내어 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구나
그럴 때 가만히 있는다
코이케 류노스케 덕분에 남을 괴롭게 하는 소음을 줄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코이케 류노스케가 권하는대로
천천히 먹고 천천히 말하고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말처럼 우아해진 기분까지 든다
책꽂이에 꽂지 않고 오며 가며 보려고 탁자 위에 그냥 놓아두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