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 억척가
이자람에게 구신이 쓰였다
난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겠다
구신이 쓰이지 않고서야 한 사람의 눈빛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순박한 새댁이기도 했다가
모질고 그악스런 아낙이었다
잔인한 병사이기도 했다가
불쌍한 아들이기도 했고
거들먹거리는 장군이기도 했다가
느물거리는 남정네이기도 했다
열아홉 큰애기의 청순한 영혼이었다가
자식잃고 눈이 뒤집힌 에미이기도 했다
구신이 쓰이지 않고서는 한사람이 그렇게 딴사람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자람 나이 이제 서른셋이라는데
그 어린 여자가 어찌 자식잃은 에미맘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런데 그 여자가 자식을 잃고 귀신곡성으로 울부짖는 에미가 되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는 그 모습이 너무나 처절했다
징그러울 만큼 감쪽같은 이자람이었다
대단한 예술가
이자람에게 감탄하고 감탄했다
그 자그마한 몸 어디에 그런 에너지가 숨어있는 것인지
두시간 반 동안 한 여인의 기구하고 처절한 한살이를 판소리로 들려준다
무대에서 이자람은 부채하나 들고 소리를 할 뿐이었는데 나는 한편의 영화를 본 듯했다
조선시대에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꾼이 책을 읽어주면 듣는 이들이 얘기 내용에 흠뻑 빠져 울다가 웃다가 했단다
너무나 실감나게 나쁜놈 역할을 하는 바람에 듣던 사람이 격분하여 칼로 찌르는 일도 있었다한다
이자람공연을 보면서 그얘기가 이얘기구나 싶었다
저러다 탈진하겠다 싶을 만큼 몰입하는 이자람을 보면서
공연이 끝나면 사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가까이서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녀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작년에 이은 앵콜공연에
전회매진에
공연시작 두시간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열기
그럴 만한 공연이다
대단한 이자람을 봤다
대단한 억척가를 봤다
2012년 5월 13일 엘지아트센터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