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장담그는 날

천천히2 2012. 4. 16. 12:46

우리엄니 나에게 기대를 하고 계신다

나중에 엄니 안계실 때 며느리가 고추장 된장 간장을 담가먹을라나 하는 엄청난 기대

"너도 배우라고 일부러 불른겨 해먹을라나는 모르겠지만"

햇빛이 따땃한 봄날 엄니와 된장 간장을 담근다

 

소금물에 넣어두었다가 꺼낸게 된장되고 그 물이 간장된다는 거는 탁이동화책에서 본 적 있다

근데 직접 해보니 다 신기하다

소금물에 40일정도 불린 메주를 으깨는데 빛깔이 허여멀건한데도 냄새가 아주 좋다

정말 신기하지 이걸 항아리에 담고 햇빛 잘 드는 곳에 놔두면 노랗게 익는거다

된장이 아주 짜야 여름에 쉬지 않는다는데 얼마큼 짜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소금물을 넣고 "어떠냐"고 물어보시는 엄니

처음 맛보고 "짜요" 소금 더 넣은 후에 맛보고 "짜요"만 하는 나

몇번을 그러다 엄니랑 서로 쳐다보고 웃고 말았다

근데 소금물 넣어가며 된장반죽을 뒤적이는데 허리가 무지 아프다

작년가을에 콩 20키로로 메주를 만드셨다는데 빨간 다라 한가득이다

우리엄니 해마두 혼자 이걸 하셨구나 

직장다니는 며느리 힘들다고 거의 평일에 이런 일들을 하신 엄니

나는 그동안 몇번 옆에서 잔심부름 한 기억만 있다

내가 직접 해보니 엄니한테 미안해진다

 

가마솥에 간장물을 넣고 달인다

도곳대를 가마솥에 걸쳐놓으면 끓어넘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도 넘치지 않게 잘 봐가메 불을 떼야 한다고 주의를 주셨는데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부글부글 거품이 넘치고 만다

엄니가 바가지로 간장물을 펐다 다시 쏟기를 몇번 하니 거품이 가라앉았다

찬물로 가마솥 둘레를 닦으신다

거품 닦아내시는줄 알았더니 가마솥을 식히느라 그러신거였다

우리엄니 가마솥 한가득 간장물이건만 간장 몇사발 버렸다고 너무 아까워 하신다

 

햇빛 눈부신 봄날에 엄니랑 장담그는게 참 재밌고 행복했다

엄니가 아주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엄니랑 이런거 하는게 좋아졌다

늙으신 엄니 혼자 너무 힘드시겠다는 생각도 들고

더 늦기 전에 솜씨좋은 엄니한테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달인 간장물을 항아리에 붓고나니 일이 끝났다

뒤란 햇빛 잘드는 장독대에 앉아있는 장독들이 참 순하고 이쁘다

 

모처럼 같이 대술간 우리 탁이

큰아빠가 나무 정리하시는거 거들랬더니 마지못해 밍기적뭉기적 움직인다

"탁아 시키는 일만 하면 자존심 아프잖여 탁이가 할 만한 일이 있나 찾아서 해봐"

몇번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울엄니 눈에 탁이처럼 보였겠다

마음이 없는데 할 일이 눈에 들어오겠나

겨우겨우 시키는 일만 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꼬

탁이가 내 말 안듣는다고 뭐라 할 염치가 없다

 

간장냄새 된장냄새가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