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미터의 봄
"왜 찌질한 우리끼리 서로 할퀴고 싸우고 지랄이야~~~"
준기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숨쉬기가 편해졌다
어두운 갱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웅크리고 있다가
지상의 희미한 빛을 발견한 것 같다
계속 막막했고 계속 답답했다
맞아 우리의 잘못이 아닌거야
이십년전 그때 가스 폭발사고가 나서 갱이 무너졌을 때
끝까지 준기아비의 시신을 찾았어야 했지만
그때 아내는 아파 병원비가 많이 필요했고
사고가 나고 한달이나 지나서 지치기도 했어
그러니 시신 찾는데 그 많은 돈을 들이느니
그 돈 나눠줄테니 병원비로 쓰고 유족들한테는 보상금 조금 더 주자는 회사의 회유는
거절하기 힘들었던 거지
그래서 모두를 속이고 빈관으로 장사를 지냈고
그게 죄스러워 남아있는 그들은 오랜시간 죄책감으로 괴로운거였다
돈 몇푼으로 골치아픈 문제 해결한 회사는 절대 모를 죄책감
돈에 동료를 버리고 남편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치매의 혼란에 갇히고 도박중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어미는 다시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묘를 찾지 못하고 울다 세상을 떠나게 된거지
돈에 밀려 878미터의 갱에 영원히 묻힌 아비의 자식 준기가
아비의 진실을 알게 된 계기는 크레인 위의 남자 얘기를 못하게 재갈이 물렸기 때문이지
일방적인 정리해고의 명분도 결국은 돈
돈에 밀려 18미터 크레인 위로 내몰린 남자이야기를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좌절감에
고향으로 오게된 준기는 그곳에서 17년전 아비가 겪은 또다른 좌절을 알게 되지만
그 아비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좌절하고 서러워하는 사람들이 더 서러워서
왜 찌질한 우리끼리 서로 할퀴고 싸우고 지랄이냐구~~~~~소리친다
그리고 그들은 비로소 조금 홀가분해진다
하지만 나는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878미터의 봄을 느끼지 못해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러다 무대뒤쪽면이 객석이 비치는 거울이라는 것을 알았다
봄이라는데 봄을 느끼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 거울에 보였다
무엇을 어째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크레인위의 남자는 결국 몸을 던졌다
얼마전 김진숙씨는 바로 그 크레인에서 삼백구일만에 걸어서 내려왔다
생각해보니
그게 봄이다
2012년 4월 7일 남산예술센터 탁이와 함께
이야기는 공감하는데 형식은 난해했다
탁이도 나도 어려웠던 연극
그러나 기사를 읽었을 때 탁이와 꼭 보고 싶었던 연극이었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무대를 바꿀 때 어두운 갱속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보는 느낌이 참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