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유혹

천천히2 2011. 11. 10. 14:07

관리하는 업체 사모님이 서류봉투를 내미신다

다른 직원들 모르게 눈짓으로 입술로 넣어두라고 신호하신다

아이고 또 이러신다

곤란한 일인데 다른 직원들이 있어 뭐라구두 못한다

눈으로만 애매하게 고마운 표시를 한다

 

몇달전 시장서도 이러셨다

사무실이 아닌데서 만나 반가우셨는지 부진부진 오만원을 주시며 과일사먹으라고 한다

수임료 받고 일하는 직원인데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길에서 실갱이가 길어지는 것도 곤란해서 받아넣었다

명분없이 받는 돈이 마음에 걸렸다

업체 사장님이 우리아버지랑 비슷해서 더 그랬다

인정이 많아 형편하고는 상관없이 늘 남을 챙기셨던 우리아버지

염치없이 그돈을 받기만 할 수 없어 건강식품을 하나 사서 업체사장님께 드렸다

따로 마음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당부도 드렸다

그랬는데 또 이러신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명분없고 부담스런 상품권을 받고 내가 내심 좋아한다

월급날 일주일 앞두고 마침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다

가뭄에 단비처럼 그 돈을 요긴하게 썼다

그런데 내 마음이 참으로 요상하게 변한다

애초 반은 다시 돌려드린다는 생각으로 따로 보관했다

그랬었는데 더 아쉬운 상황이 되니까 그마저도 다 쓰면서 나중에 월급타면 채워놔야지 했다

그런데 급한 걸 해결해놓고 보니

이번에는 그새 욕심이 자라 돌려줘야지 마음먹었던 것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받아쓰던데 나라고 굳이 돌려줄 필요가 있나?

내가 조금 뻔뻔해지고 실속차릴까?

요런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살금살금 나를 갉아먹는 유혹

 

이렇게 사람이 무너지는거구나

눈앞의 작은 이익에도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데 

더큰 유혹이라면 그 유혹을 물리치기가 쉬운 일이 아니겠다

뇌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보면서 참 뻔뻔하고 어리석다고 욕했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라고 그러지 않았을거라는 장담을 못하겠다

 

나도 잘 모르는 나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나는 전혀 모른다

다만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용기있게 행동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순간순간을 잘 살아야 하는거지

이번에는 사장님한테 뭘 사드려야 하나

우리아버지라면 무얼 좋아하실지 잘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