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2011년 짧은글(11.01~12.31)

천천히2 2011. 11. 8. 09:41

2011년 11월 4일

벚꽃길에 나무한그루가 베어졌다

나무가 나란히 이어지다 그 나무만 쓰러지고 다시 나란히 이어진다

나이테를 세어보니 십년이 넘었다

양옆에 나무는 건재한데 이 나무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모습이 안쓰러워 오면서 자꾸 뒤돌아봐진다

 

2011년 11월 8일

에프티에이반대시위를 하는 사람이 물대포 맞는 사진이다

우리문제인데

난 강건너불구경하듯하고

이들은 온몸으로 반대하고 있다

무임승차하는 삶

많은 사람들에게 빚지고 산다

 

2011년 11월 9일

샤워를 하다보니

자두가 내가 벗어놓은 바지위에 몸을 사리고 앉아 자고 있다

아주 편안해보인다

내 냄새를 좋아하는 자두

내 흔적에서 자두가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행복하다

누구의 품이 되어준다는게 참 기분좋은 일이다 

 

2011년 11월 9일

향에 불을 붙이면 금새 작은 불꽃이 핀다

잠시 불꽃을 지켜보다 엄지와 검지로 살그머니 쓸어올리면

불꽃이 지고 까만 그 자리에서 하얀 연기가 오른다

아주 꺼졌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빨간 불씨가 슬그머니 살아난다

그동안 이 과정을 모르고 향을 피웠다

불을 붙이고 훅 불어 끄고 불씨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불을 댕겼다

향냄새만 쫓았던 시간이다

얼마전부터 준비하는 과정 매 순간에 집중하니

그 시간이 향냄새만큼이나 내 마음을 고요하게 다독여준다

향이 참 좋다

 

2011년 11월 11일

골목길을 걷다보면 곳곳에 무수밭이 보인다

밑둥 드러난 무수가 배꼽드러내고 있는 배불뚝이 머슴애같아 정겹다

오래전 엄니를 도와 밭에서 일하는데

엄니가 무수 하나를 뽑아 낫으로 껍질을 쳐내고는 먹어보라고 주셨다

따땃한 가을햇빛을 받으며 밭에 철푸덕 앉아 엄니하고 무수먹던 그때가

자꾸 생각나는 가을

 

2011년 11월 12일

보름전에 엄니랑 메주콩을 디렸다

콩깍지 탑새기를 솔솔부는 가을바람에 날려보내고 갈무리한 콩들이 동글동글 순하게 예뻤다

그새 엄니가 그 콩으로 메주를 쑤셨다

꾸들꾸들하게 마른 메주를 사랑채 처마밑에 매달았다

메주가 저렇게 이쁜데 사람들은 왜 못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매달린 메주를 보니 흐뭇하다

우리엄니도 한말씀 하신다

"메주 매달아서 좋다"

혼자서는 매달 엄두를 못내시는 엄니 메주보며 또 한걱정하셨나부다

늙으신 엄니한테 도움이 되서 참 좋다

 

밭으로 무수 뽑으러 가는 엄니를 뒤따라간다

몇해전까지 꼿꼿하셨는데 허리가 꾸부정하다

울엄니 걷는 모습이 펭귄같다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처럼 늙으셨다

 

2011년 11월 13일

금오산이 겨울채비를 끝냈다

털이 복슬거리는 짐승의 등마냥 탐스럽던 숲이 꺼칠해졌다

나무에 매달린 가랑잎사이로 서석거리며 지나는 바람이 쓸쓸하다

찬바람에 꺼칠해진 엄마생각이 난다

엄마한테 묻어들어온 찬바람냄새

 

2011년 11월 15일

근무시간에 슬그머니 나가 한참동안 들어오지 않는 직원

자주 그런다

뭐 저러냐 괜히 내가 화가 난다

혼자 승질내다 생각해보니 월급주는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뭘~

 

2011년 11월 16일

천천히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을 읽는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눈물이 나는 그 여자네집

 

2011년 11월 17일

어제밤 빨래를 삶았다

아침 베란다가 눈부시다

하얀 빨래와 그 아래 올망졸망한 화분들

우리집이 참 이쁘다

 

2011년 11월 17일

나 출근하면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는 자두

현관끝에까지 따라나오는 자두가 쓸쓸해보인다

걸어놓은 웃도리를 꺼내 쇼파에다 놓는다

우리자두 내옷깔고 자면 덜 외롭겠지

 

2011년 11월 18일

여름옷을 정리했다

지난 여름 한번도 안입은 옷도 있다

내가 옷이 없는게 아니다

 

마을을 둘러싼 산 때문에 위급한 아내를 잃은 인도남자가

그게 한이 되어 곡괭이로 산길을 닦기 시작했다

몇년동안 매달린 끝에 길이 뚫리고 인도정부는 그에게 상을 주며 소원을 물었다

가난한 촌부는 대답하기를 "갈아입을 옷도 한벌 있으니 나는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옷이 없는게 불만이다가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뭘 더 바라나 싶다

 

2011년 11월 26일

똥파리가 꼬인다는건

똥이 있다는 것

 

2011년 11월 27일

교대역에서 이쁜이랑 헤어지는데

이쁜이가 운다

눈물을 닦아줘도 자꾸 운다

울애기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타기랑 있지만 우리이쁜이는 혼자 집에 가야 한다

에구 우리애기

 

2011년 12월 1일

점심먹고 산책을 나갔다

늘 걷던 길을 두고 넘의집 앞길인지 골목인지도 모를 길로 들어가본다

어라라 요리조리 이어지더니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와 큰길을 만난다

그게 재밌어서 골목만 찾아 걸었다

어디로 통할까 궁금해하며 가다가 막다른 대문을 만나면

그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골목안 집들은 반듯반듯하지 않아 우리엄마 아부지 살던 집처럼 정겹다

예산서 오십년가까이 살았는데도

이렇게 생전 처음 와보는 골목길이 있는게 마냥 신기하다

 

2011년 12월 2일

며칠전부터 술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화양연화모임하면서 술먹자고 했더니 언니들이 맞장구쳐주고

술먹으니 노래방가고 싶어 그러자고 했더니 또 언니들이 맞장구쳐주고

노래방가면 얌전히 박수만 치는 언니들이

분위기 맞춘다고 노래도 하고 아이고 좋아라

밥사주고 술사주고 노래방가주고 내가 먼 복으로 이리 좋은 언니들을 만났나

하두 오랜만에 노래방갔더니 뭔 노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노래도 잘 못하겠고..

 

2011년 12월 3일

박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오랜만에 격조있는 얘기를 들었더니 마음이 뿌듯하다

주위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다

 

2011년 12월 5일

타기가 흰머리를 뽑아주는데

한도 끝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게 없어 나는 흰머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요것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지들끼리 밭을 이루고 있었던거다

흰머리가 은빛 윤기 자르르 흐르는 것이

이쁘기는 하다

 

2011년 12월 7일

달 한뼘 밑으로

별 하나가 매달렸다

달에 달린 별꼬리

별꼬리?

'달이 별꼴이야"

 

2011년 12월 12일

어떤 노래를 들으면 노래가 아니라 그 사람 인생고백이구나 그런게 있다

쳇베이커 i'm a fool to want you를 듣는다

아이고 가슴이야

 

2011년 12월 12일

점심산책하다 독서실집을 지나친다

살림집과 연결된 조그만 이층건물이 손질이 안된 채 칙칙하게 퇴색했다

고2때  독서실비가 만팔천원이었던가

그것도 큰돈이어서 큰맘먹고 겨울방학 한달만 다녔는데..

마침 아줌마가 나오신다

"우리집 많이 낡았지? 아무도 안들어와 다 비었어

집도 늙고 사람도 늙었어"

가끔 절에서 만나는 아줌마가 오늘은 더 늙어보이신다

 

2011년 12월 13일

위안부의 기억때문에

교복입은 남학생이 군인으로 보여 욕을 했다는 할머니

나도 그랬을거고 사정모르는 이들은 당연히 할머니를 비난했을 거다

속도 모르면서

그 속도 모르면서

 

2011년 12월 14일

아침에 산티에고 책을 열다 발견한 메모

"순전히 광고보고 니생각이 나서 2009년"

그래 이 언니가 나를 이렇게 인정해주고 살뜰히 챙겨줬었지

갑자기 확 일어나는 그리움

출근하다 전화를 걸어 보고싶다고 했더니 아주아주 좋아하는 언니

내곁에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 참 많은데 까먹고 산다

'그대곁에 소중한 사람'연주를 듣고 있다

포근한 아침이다

 

2011년 12월 14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원불교앞을 지나면서 관심은 가도 들어가지지 않더니

오늘 산책하다가 그냥 그리로 들어가졌다

나무를 때는 난로냄새가 아늑한 법당이었다

수더분하게 생긴 여자분한테 원불교 설명도 듣고

유자차 한잔 대접받고 책도 얻어왔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2011년 12월 14일

뒷줄에 자리를 잡은 타기를 앞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러라하고

나는 자경언니랑 앞줄에 앉았다

우리타기가 마음에 담아두면 참 좋을 고미숙씨 얘기

강연이 끝나고 보니 우리타기 푹 잔 얼굴이다

초반에 조금 듣다가 따분해서 잤단다

아이고 우리타기~

그래도 이렇게 따라나서는 것만해도 감지덕지다

 

2011년 12월 18일

두륜산

다섯시간 산행에 왕복 여덟시간 버스여행을 한 우리타기

이불 속에서 애벌레마냥 꿈틀꿈틀 

"어떻게 해도 몸이 불편해"하며 웃는다

몸은 어려운데 기분은 좋은가보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고마운지 이뻐죽겠다

발맛사지를 해주는데도 간지럽다고 난리다

우리타기때문에 내가 많이 많이 행복하다

 

2011년 12월 22일

그리 될 일은 결국 그리되는건가부다

이쁜이가 복수전공으로 미술을 선택했다

애니고를 못가고 여고를 가면서 꿈을 접는가했는데

고삼 어느날 정말로 미술을 하고 싶다고 하던 이쁜이

이쁜이가 저의 길을 찾아 잘 가고 있는거 같아 난 기쁘다

포트폴리오로 전공여부심사를 한다는데 다른 애들이 낸 걸 보니 엄청 두껍다며 웃는다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2011년 12월 23일

이쁜이가 타기가 무엇이 되기 위해 오늘을 초조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이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기를 바란다

행복한 삶의 조건이 물질과 명예가 아님을 믿는다

내 마음안에서 이루어지는 만족과 감사가 날 행복하게 한다

이것을 우리타기와 이쁜이도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나는 이쁜이의 선택을 행복하게 지켜보고 있다

마음속의 열정을 따라가는 이쁜이가 대견하다

 

2011년 12월 25일

한시간 절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몸이 아주 죽겠다

낮잠을 자다 뒤척이는데 에고에고

일어날 때는 뼈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거 같다

내 나이 46인데 이렇다

나중에 할머니 되면 내 몸이 얼마나 괴로울까

더럭 겁이 난다

 

2011년 12월 25일

저녁을 먹고 타기와 커피를 마신다

띠아모에서 맛보라고 하나 준 드립커피인데 맛이 아주 좋다

"커피랑 같이 먹을 과자 없어?"

타기가 과자를 찾는다

예쁜 접시에 과자를 담았다

없어도 격조

마지막 하나 남은 과자를 내 입에 넣어주는 우리타기

이 순간이 참 아름답다

 

2011년 12월 26일

변기에 앉아있는데

자두가 와서 안아달라고 종아리를 북북북 긁는다

이렇게 매달리는 자두가 너무 귀엽다

자두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행복하다

나와 함께 있는 자두가 소중하고 고맙다

"아가 고마워"

 

2011년 12월 27일

나무타는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제 두륜산에서 가져온 대패밥을 태웠다

조금 조금 태우다보니 방안이 온통 뿌연하다

15층아파트방이 현실감을 잃는다

인디언 움막안에 있는 기분

자연스런 냄새는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하는거 같다

우리타기 기타학원갈 때 인디언소리내며 배웅했다

오오오오오오오~~~

타기가 재밌다고 웃는다

웃는 타기가 참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