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고역

천천히2 2011. 10. 27. 11:38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구나

지난번에 들었던 얘기가 그대로 반복된다

그때처럼 아주 세세하다

속으로 한숨을 폭폭 내쉰다

그래도 말을 끊을 수는 없어 듣는다

 

몇달전 그 친구는 새로 시작된 사랑에 들떠있었다

그 심정을 잘 알지

스쳐가는 눈빛 하나도 놓치지 않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흥분하고 감동하는 그 달뜬 상태

사방으로 가지를 쳐가는 얘기가 종잡을 수 없어 따라가기가 힘들었지만

어쨌든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얘기니 아름답다

그려그려 불꽃을 태우는겨

 

어제저녁 작은 수술을 한 친구를 위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푸짐한 굴밥을 놓고 마주앉아 아름다운 가을저녁을 즐기려고 하는데 친구의 푸념이 시작된다

그사이 사랑이 깨져버린 거다

엊그제 문자로 이별통보를 받았다니 듣는 내가 열받는다

화가 나 불불대는 친구를 어떻게 진정시켜줘야 할지 속으로 고민중인데

어느새 친구는 그 연애의 아주아주 작은 시초부터 다시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애틋하고 설레이고 벅찬 그때의 감정까지 반복하는 친구의 얼굴이 행복하다

에고 중늙이가 됐어도 사랑앞에는 대책이 없는 여자다

푼수가 따로없다

저녁먹는 두시간 내내 추억과 상처를 중구난방으로 반복하는 친구얘기를 듣는게 참 고역이었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하던지

아니면 졸가리있게 말하는 실력을 키우던지

둘중의 하나게 돼야지 이 상태로는 이 친구랑 두번 밥먹기는 힘들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