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새침한 갈대
천천히2
2011. 9. 26. 10:28
갈대의 은빛윤기가 아름답다
선선한 가을아침 솜털하나 부풀지 않은 채 새초롬하게 고개숙이고 있는 모습은
도도하고 단정한 큰애기의 모습이다
갈대가 피었다 지는 과정에 여자의 한 생이 보인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도도하던 큰애기는
가을바람과 햇빛에 서서히 풀어지니
풀어짐의 절정은 부드러움의 절정이기도 하다
화사하고 풍만한 중년여인의 자태가 보이는 갈대의 화양연화
그때의 갈대는 거침없이 자유롭다
나에게 이런 때가 있었나 싶어 부러워지는 때
화양연화는 짧고
금새 갈대의 윤기는 흐려지고 어느새 지친 여인의 추레함이 보인다
바람따라 가고 싶은 것은 가라하고 남아있는 솜털 몇개를 옛날의 흔적처럼 매단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그대로 노년의 여인이니
꽃이랄 수도 풀이랄 수도 없이 서있는 그 모습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