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 - 밤차로 떠난 여인
11시 밤차를 탔다
내가 떠나고 한참을 그 남자 하남석은 '눈물을 감추려고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거야
밤차로 먼곳에 간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는 잠시 하남석의 밤차로 떠난 여인이 되어본다
이런 쓸쓸한 기분이 좋다
우수어린 여인에 몰두하다 잠든 우리탁이를 본다
그래 나는 애가 딸린 밤차여인이었지
집에서 편하게 이불덮고 자고 있을 시간에 우리탁이가 이렇게 고생하네
탁이고개가 심하게 옆으로 꺾여 손으로 받쳐준다
내욕심으로 우리탁이를 너무 힘들게 하는거 아닌가 싶다
허나 이 세상은 우리탁이가 보고 듣고 경험했으면 좋을 일들이 너무나 많다
달밤에 우리탁이와 걷는 산길
메밀꽃 필 무렵의 한장면처럼 아름답고 정겨운 그림이다
강원도 인제 방태산의 야간산행은 내게 그런 꿈이었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
달이 있으면 더 바랄 것 없지만 비가 오면 그 또한 운치지
설레이며 이 날을 기다렸다
피난가는 길이 이럴까
특전사 천리행군이 이럴까
나는 아주 죽는 줄 알았다
너무 빠른 산행속도에 놀라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밤에는 뵈는게 없어서 막 가다보니 속도가 빨라진단다
정말이지 뵈는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거다
"미안하다 탁아 이럴줄 몰랐어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탁이 안데리고 왔지 아니 엄니도 안왔다 헥헥헥"
이렇게 정신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산행은 처음이다
그러느라 주변의 경치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주변과 교감없이 걷기만하는 산행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그래도 이슬비 맞으며 아침을 먹고 나니 한숨이 돌려진다
이제 꽃도 풀도 나무도 눈에 들어온다
우리탁이 말문도 열린다
"아까 올라올 때 내가 곰곰히 생각한건데 이거 안할거야 나는 산이랑 안맞는거 같아"
지금은 들어줘야할 때, 할 말도 없다 쩝
꼭지를 잡아 위로 단박에 쭉 늘린거 같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지날 때서야 우리탁이가 웃음을 되찾았다
탁이눈치를 보며 "다음에는 야간산행은 오지 말자" 슬쩍 말해본다
우리탁이 싫다고 안하는거보니 잘하면 다음 산행도 가능할거 같다
다행이다
빗물맺힌 나뭇가지를 흔들어 에미를 골탕먹이고 우리탁이가 재밌다고 웃는다
에미가 맹해서 연거푸 당하는 줄 아는 맹한 탁이ㅋㅋ
멀고먼 강원도 방태산에서 우리탁이랑 덤앤더머로 노는 에미는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