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장사익

천천히2 2011. 5. 7. 22:15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저녁바람이 무겁다

바람속에 서있는 그의 얼굴이 수염으로 꺼칠하다

무거운 바람이 그이의 두루마기 고름을 날리고 그의 흰머리카락을 흐트린다

회한 가득한 눈빛으로 잠시 서 있던 그가 애끓는 목청을 터트린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로 그의 참다참다 터진 듯한 소리가락이 올라간다

노래하는 그의 눈빛이 아득하기만다

그 눈빛을 보니 알겠다

저니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의 가슴에 한으로 남는 어느때로 돌아가있구나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노인이 되었어도 풀 수 없는 슬픔으로 먼곳을 보고 있는 사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인생이 그렇게 슬프고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젊은 것이 노인에게 이런 위로를 하는게 말이 되나

 

노래할 때와 얘기를 할 때의 모습이 그리 다를 수 있는지

보는 사람 눈물나도록 서럽게 노래하던 그는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시골소년이 되어 나를 웃게했다

충청도말투로 느릿느릿 우스개소리를 하는데 아이구야 귀엽기까지 했다

울리고 웃기고 내 똥꼬에 털나면 어쩌라고

 

슬퍼도 웃자고 마음먹으면 웃어진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짧아 결국은 겨우 숨긴 슬픔이 다시 드러나고 만다

그런 것이려니

선생도 나처럼 그런 것이려니

공연이 끝난 후 무대뒤로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님 한번 안아드려도 되겠습니까?"

예~어째야할지 모르는듯한 선생을 꼭 안아줬다

작은 체구였다

다행인 것은 건강하신거 같았다

어깨까지 여위어 허전했더라면 내 슬픔은 더 오래 갔을게다

선생이 서러울 거라는 내 생각이 오해라면 정말 다행이고

오해가 아니라면 나의 포옹이 잠깐이라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겠지

 

어제 저녁의 슬픔이 가시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시간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나온다

어머니 꽃구경가요 제등에 업혀 꽃구경가요

처음듣는 노래인데 첫소절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름다운 가사이건만 그냥 슬픔이 밀려온다

아니나다를까 그 노래는 고려장이었다

들길 지나고 산길 지나니 솔잎따 뿌리는 엄니

엄니 뭐하세요 이따 너 혼자 돌아갈 때 길 잃지 말라고

굳이 가사가 아니어도 음색으로 할 이야기 다 하는 장사익 선생

 

선생을 안 지 십년

그니의 노래는 너무 슬퍼서 일부러 찾아 듣게 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선생을 생각하면 바로 그의 절창이 귓전을 울린다

십년만에 본 선생이 다시 또 내 가슴에 슬픈 도장을 쾅 찍어놓아 한동안은 먹먹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