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이렇게도 무심할 수 있는건지
천천히2
2010. 11. 2. 15:05
요즘 외우고 있는 시 신부
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마음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옷자락이 걸려 찢어진 채로
오줌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세상에
그러고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라니
어찌 저렇게 무심하게 말을 할 수 있는건지 가슴이 다 서늘해진다
기다리는 이는 한순간 한순간 하루 하루로 쌓이는 시간인 것을
떠나간 사람은 사십년인가 오십년인가 잘 헤어려지지도 않는 무심한 시간인게다
그러고는 뒤늦은 궁금증도 아니고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지나가는 길에 그래도 잠시 궁금해져서
아이구 가슴이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이리 매정할 수가 있는거냐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린 아주 사소한 일로 생긴 오해가
한사람의 삶을 통째로 매운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사는게 참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