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벌받을거야
천천히2
2010. 10. 13. 09:51
허연 갈색으로 변한 가지
쪼글쪼글해진 호박
하얗게 곰팡이가 핀 삶은밤
마른꽃처럼 부스러지는 쪽파
길게는 삼주전 짧게는 사일 전에 엄니가 챙겨 주신 귀한 것들이다
죄스런 마음으로 이것들을 내다 버린다
"이거 줄게게 갖다 먹을래?"
접때 주신 호박도 아직 못먹었는데 엄니가 호박 두 개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주신다
밤을 삻아 일부러 굵은 걸로만 골라서 담으시는데 저걸 어찌 다먹나 싶을만큼 많이 담으신다
그래도 " 괜찮아요 안가져갈래요" 소리를 못한다
손주들 챙기시는 걸 낙으로 아시는데 내가 싫다하면 실망하실까 싶어서다
그리고 워낙 내 식성이 좋아 모든게 맛있다보니 받을 때 욕심으로는 곧 다 먹을거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엄니가 주신 훌륭한 반찬거리가 우리집에만 오면 원재료신세로 방치된다
엄니가 해주시는 가지나물 호박볶음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도 이름만 같지 맛은 영 딴판이다
한두번 시도하다 반찬만드는걸 포기한다
엄니는 자꾸 챙겨주시고 나는 못해먹으니 엄니가 정성껏 챙겨주신 맛난 것들이
냉장고 안에서 재고로 쌓이고 미이라가 되고 곰팡이꽃이 피고 마른꽃이 된다
이렇게 처참한 꼴로 버려지는 걸 엄니가 보시면 얼마나 아깝고 속상하실까
이럴거면 차라리 받지를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엄니가 챙겨주시는 걸 다 못먹는다고 거절하기도 어렵고
이제 내가 반찬을 좀 만들구 그래야 하는데 그게 또 어렵고
이래저래 내가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