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마늘밭

천천히2 2010. 6. 30. 17:43

엄니랑 마늘을 캐는디

나는 호구로 땅을 깊게 파고 엄니는 파인 흙에서 마늘을 추스린다

비올거라는 말만 푸짐할 뿐 비 몇가닥 오락가락

한가한 동네아저씨 한분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니

울엄니하시는 말씀

"왜 비 안온대유?"

"마늘캐라고 안오는규"

"그류? 이쁘기두혀라 이젠 거의 캤으니 와두 된다구해유"

비가 안와 딱딱해진 흙이라 호미로 캐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는 엄니

힘좋은 며느리랑 일하시는게 좋으신가보다

 

실없는 할머니할아버지 말에 실실 웃어가메 호구를 깊이 박는다 

아까 작은아버지가 지나가시다가 삽으로 하는걸 보구 갖다주셨다

커다란 포크같이 생겼다

삽으로 하는 것보다 한결 힘이 덜든다

이 호구가 그 호구일까? 만만한 호구

어쩐지 무관하지 않을거 같다

호구날을 흙속으로 푹 박고는 손잡이를 상체힘으로 누르며 흙을 떠올리면

투두두둑

마늘뿌리 끊기는 소리가 대단하다

마늘이 생긴거는 아담한데 버티는 힘이 억세다

이런 기운이 있으니 당연히 몸에 좋겄구나

나는 호구로 흙을 들썩여 마늘 뽑고 엄니는 그 마늘을 호미로 흙털어가메 간추리니

금새 차차곡차곡 쌓이는 마늘들

엄니와 호흡이 잘 맞으니 뿌듯하다

둘이여서 몸도 마음도 힘이 덜 든다

햇빛에 시달려서 추레해지는게 싫어 농사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요령이 부족한 나랑 힘이 달리는 엄니랑 둘이서 이렇게 농사지으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데까지 마음이 갔다

 

서너시간 일했을 뿐인데도 어찌나 힘든지

일끝나고 양말만 벗은 채 마루에 누워 코까지 골며 낮잠을 잤다

되게 일하고 낮잠 한숨 자고나니 개운하다

고된 농사일 중에도 이런 낙이 있구나

작은 마늘밭 그것두 엄니혼자 이틀동안 캐고 남은거 조금 캐고는 농사꾼이 다 된듯 폼잡는다

이걸 엄니 아실까 무섭다

호구질후유증으로 어깨는 뻐근한데 마음은 오래오래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