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타협

천천히2 2010. 1. 27. 23:51

퇴근해서 냄비를 열어보니 드신 흔적이 없다

혹시나 했는데 짜증이 올라온다

도대체 뭘 해드려야 드시겠다는거지

 

엄니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일주일동안 입원하셨다

계속 통원치료가 필요한 상태라 퇴원후 우리집에서 묵으시는 중이다

워낙 드시는게 까다로우신데 병원생활로 입맛까지 잃어 통 진지를 못드신다

기력없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뭐라도 챙겨드리고 싶은데

내 음식솜씨가 시원찮아서 그런지 맛있게 드시는게 없다

불고기해도 안드시고 된장찌게를 해도 한숟가락 뜨시고 김치찌게도 별로다

어제밤 늦게까지 갈치조림을 하면서 이건 좀 드시겠지 했다

내 성의를 봐서라도 한번이라도 드시려니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짱하게 그대로다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부글부글 끓는다

이 마음을 달래지 않으면 편찬으신 엄니가 짐으로 여겨질거 같다

이 노릇을 어째야 하나 저녁내내 그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잠들무렵 내 자신과 타협을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뿐이다

그 이후는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엄니가 드시도록 반찬을 만드는 것은 내 일이고

그것을 드시고 안드시고는 엄니의 선택이다

맛있게 드신다면야 보람있는 일이지만

안드신다고해서 내 성의가 무시당했다고 화낼 일은 아닌 것이다

나의 성의와 엄니의 선택이 중간에서 만나 인수인계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괜찮은 타협인거 같다

 

그런데 가만히 내 맘을 들여다보니 화가 나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엄니를 위해 애쓰는 것에 대해

성과를 보고 싶었고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다

그랬는데 번번히 그게 무시되니 짜증이 났던 것이다

아픈 엄니에게 순수하지 못했다

엄니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 유치한 내가 원인이었다

오늘 또한번 내 마음을 디렸다

검불 몇개 날려버린거 같아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