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심리상담수업

천천히2 2009. 12. 26. 21:02

12월 19일 첫째시간스스로에게 미안한 것을 차례대로 발표하는 시간언제부터인가 다른사람앞에서 내 얘기를 하려면 꼭 울먹거린다이번에는 제발 의연하게 발표할 수 있기를 바랐건만"오래전에 큰 상처가 될 일을 겪었는데 그때 스스로에게 참으라했다잘 참는 줄 알았는데 얼마전부터 울컥울컥 화가 올라온다 나에게 참으라고만 한 것이 미안하다"길지 않은 말을 하는동안 역시나 울먹울먹 머가 그리 서러운거지...

 

12월 26일 둘째시간강사가 나에게 교재의 일부분을 읽으라 한다야무지게 똑똑하게 읽어야지 하는 생각과 달리 버버벅바보같이...읽기 전에는 내게 호의를 갖고 쳐다보던 강사였는데읽기가 끝나고 난 직후는 시선이 내게 오지 않는 것 같다내게 실망한건가 하는 두려움이 살짝 지나간다이거다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거내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 나를 알면 실망할거라는 생각.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의 시선이 내게 오지 않으면 불안하다나와 시선이 마주쳐야만 내가 인정받는거 같은 느낌이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매력이 없는 사람, 시시해보이는 사람이 된거 같아 조바심이 난다그래서 더욱더 내게 시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중을 한다나 스스로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두드러져보이고 싶은 욕망이 크다그런 한편 나자신을 숨기고 싶은 마음 또한 너무나 강해 되도록이면 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자꾸 움추려든다그래서 발표할 때마다 그렇게 떨리나보다사무실에서는 손님에게 차를 낼 때도 손이 달달 떨려 찻잔을 두손으로 잡아야 할 지경이다이런 내 마음이 너무나 복잡하다

 

 

2010년 1월 9일 셋째시간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귀담아 들어주는거라는데

내게 가장 부족한 자질을 꼽으라면 바로 그것이다

평소에도 느끼는 것이었는데 강의시간에 그부분을 많이 확인하게 된다

질문이 자주 주어지는 수업인데 대답하는 이들중 몇몇이 참 거슬린다질문의 핵심을 찾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말을 하고간단히 대답할 내용을 갖고도 중언부언 사설이 길다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흔하고 뻔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한다는게 답답하고

수다떠는 시간도 아닌데 이러니저러니 한도 없이 늘어지는 말이 짜증이 나는것이다

그들과 난 다르다

강사질문의 핵심에 맞는 대답을 간단명료하게 한다

그러고는 역시 난 달라 이러고 속으로 뻐긴다

내 속이 이렇게 교만으로  가득차있다

 

나의 타고난 성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겸손이나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안쓰러움이 모두 위선적인 것은 아닐 터이다

몇권의 심리학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더 공부를 해 누군가를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심리상담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고 꼭 해야 할 이유이다

하지만 잘 들어주지 못하고 미리 판단하는 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절대 못하는 일이 심리상담이다

 

수업시간중의 길지 않은 대답에도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고 답답해하고 비웃는거 이것에도 이유가 있을거다

이것을 풀지 못하면 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숙제다

 

- 아줌마라는 말에 질색한다

그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푼수같고 눈치없이 아무때나 끼어들고 수다스러운 아줌마

그런 모습이 참 싫고 그렇게 될까봐 걱정한다

수업시간에 몇몇이 수업에 어울리지 않는 아줌마같은 모습을 보여서

그렇게 질색을 하는거 같다

 

 

2010년 1월 16일 넷째시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들이 각각이다

끝까지 살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대책을 세운 후 구조를 기다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겠다고 했다

죽을 상황이라도 너무 쉽게 목숨을 포기한다고 옆에 언니가 답답해 했지만

삶에 그리 큰 기대가 없고 애착이 없기에 살겠다고 아둥바둥 하기 싫다는게 내 생각이다

 

삶에 지쳐 이렇게 시큰둥한가 종종 내 허무가 걱정되기는 했었다

근데 오늘 선생님이 또한번 나를 놀라게했으니 그건 타고난 기질이 시키는 일이란다

나에게는 한 짐을 덜어주는 설명이다

염세적이고 비관적이고 우울한 내 성격이

내가 겪었던 크고 작은 일의 영향때문이라는 생각을 오래동안 해왔다

그 생각은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을 겪은 연유보다는 타고난 기질의 특징이라고 하니

내가 스스로 뒤집어 쓴 멍에를 벗어버리는 기분이다

돌팔이의사의 엉터리 진단에 오랫동안 환자노릇을 한 셈이라고나 할까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 성격의 특징이 마음에 든다

생의 마지막을 막힌 비상구앞에서 절규하지 않고

나의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함께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마지막인사를 남길 수 있는 

내 성격이 참 마음에 든다

애니어그램을 계속 공부할 생각이다

 

탁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안전한데가 분명 있을거라고 거기서 구조를 기다린다고 했다

이쁜이는 문자를 보낸단다

 

2010년 1월 16일 다섯째시간 - 모임때문에 조퇴

2010년 1월 24일 여섯째시간 - 부가세신고때문에 결석

 

2010년 2월 6일 일곱번째 시간

꿈과 계획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

놀라워라

다들 확실한 목표에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었다

언제쯤 무엇을 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무엇무엇을 준비중이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참 발표하기가 민망했다

내 인생관은 하루살이다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것은 없다

다만 심리상담에 관심을 많아 그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

그것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없고 다만 그 분야의 책을 볼 뿐이다

강사가 의지와 신념의 힘을 본인의 인생으로 증명하는 분이라

내 말이 열흘 삶은 호박에 송곳도 안박힐 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발표를 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다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루살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은

오늘 하루를 굉장히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자신만만한 마음일수도 있지만

내게 지워진 책임감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일 수도 있단다

아 이럴 때 난 감탄한다

그저 막연하게 나의 상태를 풀어놨는데 그것에 대한 이름표를 정확하게 척척 붙여놓는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설명은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인데

듣는 순간 맞아 그거야 싶었다

도대체 내속에 무엇이 얼마나 헝클어져있을까 늘 궁금했는데

이렇게 한가닥 한가닥 정리가 된다

참 재미있다

 

2010년 2월 20일 여덟번째 시간

날 전적으로 믿어주고 어려울 때 격려해주고 힘이 되주는 사람,

내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코치라했다

내 인생의 코치는 누구냐는 질문에 참 당황했다

어려서부터 가만가만 생각해봐도 꾸준히 상호교류가 되는 존재로서의 코치는 없었다

수업흐름에 방해되지 않게 아무라도 대고 싶은데 없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은 늘 있다

하지만 나를 격려하고 내게 조언을 하거나 위로해주는 존재,

늘 믿는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는 존재는 나 스스로다

히딩크, 금난새,빌게이츠,김인식,안철수 사진이 나열된 끝에

빈칸에 담길 내인생의 코치를 나라고 발표하면서 약간은 두려웠다

나의 이런 생각이 병적인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많이 다른 내 생각이 병적인 거 같아 불안하다

결혼생활에서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내 마음을 병들게 했을 것이고

그래서 오늘처럼 남들과 너무나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이라는 불안감

발표를 앞두고 내가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불안감 때문이가보다

 

2010년 2월 27일 아홉번째 시간 

어항속에 물고기로 가족을 그려보라고 했다

제일 위에 나를 그렸고

물풀속에서 놀고 있는 탁이를 그렸고

심각하게 조약돌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이쁜이를 그렸고

광어처럼 바닥에 납작 누워있는 남편을 그렸다

사실 남편을 그릴 때는 많이 망설였다

어디에 그려야 할지 난감해서다

그런데 위치가 위로 올라갈수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란다

나는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음이 탁이고 그리고 이쁜이 그리고...

내가 남편의 존재를 그렇게까지 바닥으로 놓고 있었다는게 새삼 놀랍다

남편과 아내의 인연이 다 했음을 새삼 느끼는 경험이었다

 

2010년 3월 6일 마지막 열번째 시간

나의 비전에 대한 발표시간

얘기의 촛점이 직업에 맞춰져 있어 난 얘기할 것이 없었다

강사의 질문에 정리를 해놓은 것은 있었다

나의 비전은 오늘보다 성숙한 사람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도구를 말하자면

엄마라는 역할

세상에 대한 호기심

상처받은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가져야할 도구는

내맘과 너무나 다른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경제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이 대답은 강의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차라리 아무말도 하지 않는게 나을 거 같아 패스!를 말했다

 

유원장님의 시간은 부담스러웠다

미래에 대한 구제척인 계획이 전제가 되어야 진행이 되는 수업이었다

놀랍게도 나를 제외한(아니다 영창씨도 나와 비슷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그림과 그것을 위한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계획중 일부는 이미 다 준비가 끝낸 상태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하루 살아내기바빴다

가끔 고개 들어 멀리 내다 보기도 했지만 그 길은 지금의 나는 가기 벅찬 길이어서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당장의 발걸음을 내딛기 바빴다

그러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내 상황를 합리화했던 것인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이 나름 훌륭한 삶의 한 형태라고 믿게됐다

운명의 힘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면 어떤 상황이어도 결국은 그리 될 것이라는 생각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을 감사하며 성실하고 진실되게

즐겁게 사는 것이라도 믿게 되었다

이런 나이니 유원장님의 수업시간에는 완전 물위의 기름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원장님의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인생관과 그분이 이루어낸 결과에 어느만큼의 자극은 받았지만

나와는 너무나 다른 유형이어서 수업시간이 편치 않았다

나같은 유형의 사람도 배려를 좀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다

 

 

 

 

 

숙제 - 내가 나를 열가지 칭찬해주기 

1.각자의 이름표가 있다

끈을 조절하지 않고 걸으면 배꼽까지 내려가 책상에 가려져 아무도 볼 수 없는 이름표가 된다

난 그 끈을 줄여 이름이 가슴께에 오도록 했다

강의시간에 강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남보라고 거는 이름표니 배려를 해야 했고

그 결과로 수업시간에 강사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나 참 잘했어요

 

2.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쓰레기를 두개 주웠다

주을까말까 하던 마음에서 머무르지 않고 몸을 움직인 나 잘했어요~

 

3.탁이 이쁜이한테 화를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욱 하고 올라오는 화를 입안에 잠시 가두어둔다

대부분 그 화를 물고 있는 짧은 시간동안 상황이 나아져 화를 낼 필요가 없어진다

성급히 화를 내지 않아 다행이구나 안도한다

그런 일이 잦다

내가 잘하고 있다

 

4.사우나실에 들어가니 한사람이 건강체조에 대해 일행과 얘기를 하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옆자리에 앉아 어떻게 하는 거래요? 말을 걸었더니 신나게 얘기를 해준다

그니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내가 반가웠고

나는 낯선이에게도 말을 거는 내 용기가 대견스러워 훈훈한 시간이었다

 

5.강의실 책상이 두줄로 놓여있다

두줄 간격이 좁아 드나들기가 불편했다

비어있는 뒷줄 책상을 조금씩 밀어놓으니 공간이 넓어져 여럿이 편하게 됐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불편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내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하다

 

6.열시넘어 모임을 끝내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거하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보내게 됐다고 아이들 옷을 싸는데 마음이 심란하단다

되풀이 되는 사연이라 지겹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곁에 있어줘야 될거 같아 만났다

피곤하다고 친구에게 무심할뻔 했던 순간을 잘 넘긴 나 참 잘했다

 

열개를 못채우겠다

칭찬거리가 없다

나 자신에게 인색한 것은 아닌데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