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이선생님의 삼성장학재단추천서
<멘토 자기소개, 아이와의 인연>
*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25년 경력의 여교사입니다.
천안여중과 천안중학교에서 근무를 하다가 옮겨간 예산여자중학교에서 2학년인 희경이를 만났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그것을 표현하는 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수업에서 희경이의 ‘천천히 생각하는 모습과 여유롭고 생각담긴 발표’는 참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도서실에서 아이들이 책과 만나는 시간을 자주 만들려고 애쓰던 내 수업에서 희경이의 독서력은 빛났습니다. 조용히 넘나들며 흘러가는 생각, 공책에 앉은 문자로 전해 오는 그 아이만의 반짝이는 생각가지들...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글과 어울려 자리잡은 그림. 그녀가 만난 독서와 문화 매체들의 폭과 깊이까지, 조금만 생각거리를 주어도 놀랍게 무성해지는 그녀의 생각 잎새들과 열매를 보면서 나는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이런 즐거움에 중독되어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지.” 가르치는 즐거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아이였지요.
전국 어디나 별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사교육이나 점수에 상대적으로 덜 시달리는 시골 아이들은 내 국어시간에 매우 빛났고 그 중에도 희경이는 더 은은한 보배였습니다.
더욱이나 만화와 책, 애니메이션, 영화 등 매체와 만나고 감상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사로서 희경이는 더 소중했지요.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고 싶어했으니까요. 국어시간에 반짝이던 눈. 호기심 가득하나 평화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내밀고 귀기울이던 모습으로 언제나 사람을 편하게 만들던 이 아이를 만나던 재미를 어떻게 짧은 글로 전할 수 있을까요? 수업하는 사람의 눈에 힘을 실어 주던, 생각의 깊이가 있다 싶은 대답, 쓰기는 국어공책을 통해 더 생각하기와 더 쓰기로 이어지고 칭찬과 감탄으로 펼쳐지며 국어공책은 참으로 풍요로워 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희경이의 공책을 애정으로 살피던 어머니의 편지가 내게 날아오면서 그 가족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3학년 일 년 동안 국어시간에는 만나지 않았지만 혼자, 친구와 함께, 또 어머니와 같이 꾸준히 이어진 대화와 독서록, 또 독서록을 통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눔을 통해 이 아이가 얼마나 소리 없이 빠르게 깊이 자라고 있는지, 참으로 기뻤습니다. 맑은 눈 볼 때마다 즐거웠던 그 공책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희경이와 어머니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없음을 아쉬워했는데 이제 장학금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소중하고 더할 나위 멋진 사람 하나가, 문화 창조자 하나를 키우게 될 것인지 가슴이 설렙니다. 그 작은 창조자가 만들어 낼 수많은 사람의 행복은 또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참으로 넉넉한 문화생활을 체험하는 그 가족들을 보면서 내가 누린 문화생활은 ‘허영’이 아니었는지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정말로 문화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즐기는 아름다운 가족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자랑하지 않고 느끼는 그 어머니의 편안하고 깊은 눈을 볼 때마다, 검소하고 단정한 그 어머니와 책을 나누며 대화를 할 때마다...
돈이, 물질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알맞게 쓰일 때 얼마나 그 가치가 커지는지, 사람을 살리고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부디 미래 창조자의 손과 발과 마음에 작으나마 경제적 자유로움이 날개처럼 펴지기를!
* 멘토 경험이라... 주일에 보통 한 학급 네다섯 시간 수업을 하는 국어교사는 오히려 담임보다 아이들을 잘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읽고 생각하기, 말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내 수업에서 교사인 나는 수시로 아이들과 말로 대화하고 공책에 ‘더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글로 대화를 하지요. 따라서 나는 수많은 국어딸과 국어아들을 둔 ‘국어엄마’로서 누가 시키지 않았으나 퍽 쓸모있는 멘토역할을 수시로 하고 있다고 자부한답니다. ^_^ 때로는 아이들이 내게 멘토가 되기도 하지요. 바람직하지 않나요, 아이들이 바로 교사에게 힘인 것을요!
* 박경이가 쓴 책 <얘들아 연극하자 : 공저> <만화 학교에 오다> <천방지축 아이들 도서실에서 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