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솔롱고 - 뮤지컬 <빨래>
솔롱고
미안해요
당신이 집주인영감에게 발길질 당할 때
뛰어들어 말리지 못했어요
마음으로는 당장 그 영감을 향해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싶었는데
비겁하게 그냥 앉아있었네요
말한마디 못하고 그냥 그러구 있었던 게 자꾸 생각나 괴롭습니다
안전거리 유지하고 있을 때는 정의의 갑옷을 입은 듯
인정을 따지고 도리를 따지는 저라서 더욱 부끄럽습니다
나중에 나이들면 나도 구씨처럼 술먹고 한탄만할거 같아요
시팔 진짜~
시팔 진짜~
구씨가 무기력하게 욕만 하고 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니의 능력밖의 현실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요
내 인생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의 그 답답함을 잘 알지요
에이 시팔 진짜~
근데요 솔롱고
나 당신이 사는 동네 다녀온 후 자주 웃어요
좋아서요
마음이 가벼워져서요
그 동네 사람들의 에너지가 내게 충전이 됐는가봐요
지난해부터 간간 그 동네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지요
궁색해도 산뜻하다는 얘기였어요
동네가 정말 궁색하더군요
아주 조그만 시골읍내 아파트에서 사는 내게
당신이 사는 동네는 아주 드라마스러웠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요
그저 구경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당신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내 얘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구분이 없어지대요
그 동네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내 아이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들 처한 상황이야 각각이 다르겠지만
억울하고 부당하고 슬프고 막막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하고 도와주고 기대고 위로하고 그렇게 살아가잖아요
낮으면 낮은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말이예요
중요한 것은 마음이잖아요
희망을 담고 있는 마음이요
당신들에게는 그것이 있었어요
함께 간 우리 이쁘니가 당신들의 아픔을 보며 울더군요
이쁘니의 손을 꼭 잡고 기도했습니다
내 아이에게 좋은 일만 생기라고는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행복하라고만 기도하지도 않겠습니다
늘 좋은 자리에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희망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아이가 그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해도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들이 제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서로 기댄 모습이 사람 人이라고 하지요
당신과 나영씨가 서로에게 잘 기대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너무 어려운 형편이어서 당신들의 세레나데가 더욱 아름답고 절실하더군요
지금도 눈에 선해요
당신과 나영씨가 마주하고 있을 때
멀리 보이는 어느집 지붕위에서 빨래가 살랑살랑 흔들리던 모습이요
솜털을 간지르는 미풍이 당신들 마음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동네
다시 갈게요 안녕
2011년 3월 12일
저러고 삼년이 흘렀다
어제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우리탁기와 함께.
그곳에 내가 아는 그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솔롱고로 나영이로 할머니로 희정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처럼 날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사람들
나에게 인생이 살만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오기 싫었다
그들과 이웃하고 살고 싶었다
아직 삶의 고단함은 모를 우리탁이는
슬프고 힘든 것이 그것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 나와 함께 이 동네까지 따라와준 우리탁이가 정말 고맙다